젊음이라는 아트웨어(artware)로 예술하기
1. 젊음이라는 가능성
2008년 인미공 신진작가 지원프로그램에 참여한 포오스트 이트(Post-EAT 김재환, 김청진, 박길종, 박은진, 호상근, 유동휘, 마승범)라는 단체가 있다. 이들은 공용주차장에 개점 홍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춤추는 인형과 에어 자동차를 주차시켰다.(주차장 프로젝트) 또한 종로구 단성사길 서림기획의 임대공간을 빌려 모든 벽면에 거울을 부착하고 미러볼을 설치한 다음 이틀 뒤 철수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였다.(임대프로젝트) 이들은 Post를 장소나 공간으로 파악하여 ‘공간을 먹는다’라고 표현한다. 플래시몹(flash mob)과도 같은 그들의 퍼포먼스는 공간에서의 놀이 행위를 예술로 인정하는 젊은 작가들의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포스트 잇은 ‘식사이후’를 뜻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후식으로 차를 마시거나 유흥비로 쓸 돈을 주차비를 지급하거나 공간을 임대하여 몇 시간 동안 그 공간에서 예술적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적이다. 즉, 그들에게 예술은 놀이이며 재미를 추구하는 일 이상의 특별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공간이 가진 기능을 무력화 시키거나 위트있는 웃음을 유발하는 그들의 퍼포먼스는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예술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포스트 잇이 기발한 상상력과 실험으로 젊음을 드러내는 반면, 특별한 재료를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신선함을 전해주는 작가들도 있다. 폐타이어를 사용하여 동물의 형상을 조각하는 지용호, 다 먹은 포도송이와 수박씨를 작품으로 만드는 최진기,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용도로 만드는 양진우, 종이박스를 사용하는 김현준, 세척제와 식용유를 섞어 회화를 표현하는 최종운, 닭을 갈아서 야구공을 만든 이완 등 많은 젊은 작가들이 일반적이지 않는 재료들을 작품에 사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오브제를 작품에 가져오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매체를 선택한다. 즉, 젊은 작가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작품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젊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열정, 도전정신 탈기능주의 미학의 추구, 혹은 매체혼종에 있는 것일까? 아마도 젊음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청년정신을 대변하며, 이는 성과보다는 목적과 의미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삼는 그들의 가치관과 결부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 젊은 작가들의 가치관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것은 사회 시스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디지털 시대의 젊은 작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들과 이미지들을 수집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이미지들은 거침없이 차용되고 패러디되어 젊은 작가들의 작품아이템으로 등장한다. 뉴스에 보도되는 끔찍한 사건, 사고나 전쟁에 대한 이미지 또한 그대로 사용된다. 하용주의 <가스마스크>나 이재훈의 <Unmonument>, 안경수의 <푸른 풍경>, 권경환의 <Ballistic missile> 송현주 등은 전쟁의 이미지를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나 유희적 효과로 작용한다. 이밖에 강유진, 김수영, 김효준, 임상빈 정재호 등 도시의 건물을 표현하는 작가들이나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이미지들을 조합해 만든 작품들도 많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를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재구축하여 기존의 텍스트를 변환시킨다는 것에 있다. 이는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신조어와 줄임말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21세기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은 정보습득과 활용면에서 월등히 앞서간다. 디지털 영상기술과 컴퓨터의 활용, 블로그와 인터넷 동호회를 통한 정보공유의 확장가능성은 무한하다. 게다가 유학과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등의 기회를 가지며 세계적인 정보망을 구축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유투브에 전송한다. 따라서 회화와 미디어아트, 조각과 사진 등 다양한 매체들이 동시에 작품에 활용된다. 즉, 젊은 작가들은 디지털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며, 자신들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바꿔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김한나, 경성현, 신영미, 성유진 등 자아와 인간의 본질을 경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추구한다. 그렇기에 현 시대 젊은 작가들의 가치관은 쉽게 범위 지워지지 않으며 언제나 확립 중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작들의 성향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의미보다는 행동과 표현함에 초점을 맞추며, 개념보다는 놀이를 강조한다. 물론 제도권에 안착하여 질 좋은 작품들을 제작하는 젊은 작가들을 배제할 수는 없다. 젊은 작가의 가능성이란 바로 예술적 가치와 실험적 가치, 그리고 진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도전정신과 열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잠재성(potential)이 젊은 작가들을 대변하며 예술로 그들을 꿈꾸게 만든다.
2. 왜 젊은 작가를 지원해야 하는가?
1997년을 기억한다. 바로 세계적인 스타작가인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세기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 왕립미술원에서 개최한 '센세이션(Sensation)' 전시는 데미안 허스트를 위한 생일잔치였다. 이 전시는 광고회사의 경영자이자 컬렉터인 찰스 사치(Charles Saarchi)가 기획한 전시로 젊은 작가에 대한 그의 열정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데미안 허스트가 yBa(Young Britisch Artists)라는 그룹을 만들었다면, 찰스 사치는 당시 젊은 작가들의 가능성을 미리 예견하고 적극적인 지원 및 후원을 한 사람이다. 그는 1980년대부터 각 대학 졸업전시장이나 대안공간(한국의 대안공간과는 성격이 다른 복합문화공간)을 찾아다니며 무명작가의 작품들을 사들였다. 물론 상업적인 행위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따랐다. 여하튼 당시 영국 미술계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센세이션’은 이후 영국미술의 방향을 바꾸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런던을 뉴욕과 같은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어주었다. 물론 데미안 허스트와 찰스 사치 또한 영국미술의 급상승과 함께 세계적인 명성과 권위를 가졌다. 한국의 1997년 또한 매우 중요한 해이다. 젊은 작가들이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당구장과 까페를 돌며 친선을 도모하던 젊은이들이 컴퓨터 앞에 모이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해 겨울 불어닥친 IMF는 경제뿐 아니라 예술분야도 냉혹한 한파로 작가들을 내몰았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였다.
IMF는 한국의 미술시장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IMF는 화랑들로 하여금 재정난의 극복을 위한 경매나 대형전시의 기획 등을 통해 미술시장의 거품 제거, 전문적인 미술품 평가 작업을 실행케 하였다. 그 결과 대가의 고가작품이 곧 문화적 재화의 상징이라는 명분대신 작품의 예술성을 중요시하고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문화적 풍토가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특히 몇몇 갤러리는 대기업과 언론과의 협력을 유지하고 출판물과 교육프로그램, 웹사이트, 미술전문 연구소를 차리는 등 침체된 미술계의 변화에 앞장섰으며,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기획전을 열고 세계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또한 비영리성을 추구하며 탄탄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젊은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활동을 지원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대안공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대안공간 루프, 사루비아다방, 풀, 쌈지스페이스 등 많은 대안공간들이 조건 없이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기 시작하였고, 대안공간은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었다. 이를 통해 배출된 김기라, 홍영인, 정연두, 이용백, 고승욱, 강홍구, 정정주, 함진 등 많은 작가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하였다.
2000년 이후 인터넷은 젊은 작가들이 스스로 작품을 알릴 수 있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고, 작가라는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아 미술계는 젊은 작가들로 넘쳐났다. 젊은작가 발굴, 영아티스트, 젊음 등 젊다라는 단어가 제목과 기획에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았으며, 각 화랑에서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고 각종 문예기금에서 국가적으로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기 시작하였다. ‘신선하다’라는 것은 곧 ‘젊다’라는 것을 의미하며, 젊음은 상품 및 예술작품의 보증서가 되었다. 물론 젊은 작가의 가능성이라는 긍정적인 부분만 강조하여 작품의 진정성과 예술성에서 벗어나 상품가치와 뉴 트랜드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되겠지만, 그들의 잠재력을 믿고 다양한 실험들을 할 수 있도록 텃밭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난 작가와 작품들이 맛있는 문화예술의 열매들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문화의식의 저변을 확대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의 저변은 몇몇 스타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작가와 그것의 향유자에 의해 형성, 확대되기 때문이다.
3. 젊은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
1960년대 이건용, 성능경, 이승택 등과 함께 한국 퍼포먼스 1세대로 불리는 김구림은 회화, 비디오아트, 대지예술,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였고, 현재도 <음양>이라는 시리즈로 이곳저곳에서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70이 넘은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젊은 작가 못지않은 세련미와 감각적 재치를 느낄 수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작가는 어떠한 것을 가지고도 자기화 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작가다’라고 말하였다. 즉, 그에게 작가란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최근 각종 미술경매시장에서 상한가를 기록하는 젊은 작가들의 소식과 잘나가는 갤러리의 전속계약 경쟁, 수많은 젊은 작가지원 프로그램과 전시, 창작스튜디오, 문예기금 지원 등 젊은 작가들을 현혹시키는 많은 정보들과 정책들이 있다. 그러나 젊다라는 말 속엔 이미 젊음의 유통기한이 계산되어 있다. 이 말은 젊음의 활력과 신선함 다음의 단계에서 보여줘야 할 예술적 가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작가들의 언제까지나 젊은 작가로 불려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신의 예술적 관점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젊은 작가의 가능성은 바로 이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자신의 작품세계의 성격을 규정하지 않고, 여러 실험들을 할 수 있는 자유는 작품의 소재와 주제를 다양하게 접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다른 작가들과의 경쟁에서 오는 창작의욕은 예술적 의식을 고취시킨다. 젊음의 가능성을 ‘새로움’으로 무장하되 젊음 자체를 담보로 삼지 말아야 한다. 작품을 교환가치, 평가가치로서의 재화나 국제적 명성에만 집중한다면 ‘새로움’은 금세 시들어버릴 것이다. 자신만의 문화콘텐츠, 즉 아트웨어(artware)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진지한 예술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비단 젊은 작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젊은 작가를 바라보고 함께 전시 및 행사를 진행하는 큐레이터, 화상, 비평가를 비롯한 미술관련 종사자의 젊은작가에 대한 관심과 진지한 비평, 그리고 격려와 지원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젊음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열정이자,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의 표현이기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다. 그리고 그 잠재력은 한국미술의 위상을 높이고 문화적 토양을 탄탄하게 다지는, 소멸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작용할 것이다.
글|백 곤(paikg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