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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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는 현대 미술관이 한결같이 하얗게 칠해진 공간 중앙에 작품을 놓고, 그 공간이 "바로 이것이 예술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곳 미술관에 있기 때문이다" 하는 것에 MIND THE CRAP(오물 주의) 라는 페인팅으로 대답한다.
뱅크시의 작품은 갤러리의 하얀 벽 기능이 필요하지 않다. 사회성을 담고 있는 강렬한 이미지들은 사람들을 주목 시키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갖고 있다.
예술의 상업화, 제품화에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뱅크시의 철저한 익명성으로 사람들에겐 뱅크시의 익명성이 상품화 되기도 하고, 예술의 상업화를 거부하는 뱅크시의 작품이 갤러리의 하얀 벽에 걸려져 갤러리에 물질을 지불할수 있는 사람들과 만난다.
뱅크시의 작품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뱅크시가 원하는 것 만큼의 진정한 예술의 가치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자신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수 있을 만큼의 이슈와 약간의 접근성이 아닐까?
화이트 예술을 오물주의로 치부하는 뱅크시는, 익명성의 철저한 그늘 속에서 철처히 계획된 장소와 페인팅으로 거대 집단과 대중속 획일화된 모순에 필요한 응답을 만들어 낸다.

정화조 속에 쌓여 있는 오물은 개개물이 쉽게 구분되기 어렵지만, 길거리에 노상방뇨된 오물은 수 없이 대중에게 노출된다.

노상방뇨에 익숙한 뱅크시는 익명성으로 인한 대중심리 이용에 적절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 효과의 하나로, 뱅크시를 모방하는 수없는 노상방뇨가 이뤄졌고, 익명성의 뱅크시는 미술관으로 회귀한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겠지만, 미술관을 오물로 치부하던 뱅크시가 미술관 안에서 스스로 상업성, 상품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뱅크시의 예술 운동에 예술가들이 동참하는 것이 발전된 모습의 예술의 형태이거나, 표현적 기법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뱅크시의 운동이 담겨져야 할 공간은 갤러리고, 갤러리는 통하는 순수미술 작가들,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릴라성 아티스트들의 대중화? 일반화가 아니라, 갤러리의 공간이 더욱 대중화 되어야 하고, 갤러리를 통해 작업을 내놓는 작가들이 갤러리가 아닌 공간, 일반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작업을 들고 나와야 한다.
이 사회적 공간에 채워지지 못한 예술의 대중화는 대중에게 맞는 새롭고 가벼운 예술을 창조해 내는 것이라기 보단, 기존의 예술이 더욱 대중에게 공개되며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거리에 나오기 위해 작가의 작업이 거리에 맞는 그림으로 새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갤러리에나 걸릴 수 있을 법한 작품들이 거리로 나오고 보여지는 것이다.
작가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생각과 과정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작가는 단지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머진 작가 이외의 사람들 몫이다. 뱅크시도, "처음부터, 또 결국엔" 대중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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