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왔다.
몸살과 생리통으로 인해 오전 오후 시간은 거의 잠으로 시간을 보냈다.
적당히 흘린 땀 때문인지 저녁이 되어서는 살과 뼈 사이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사라졌다.
밥을 차려 먹으려고 준비하는 중에 동네에 살고 있는 Y에게서 문자가 왔다.
Y의 회사가 마침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 앞에 있어서 부산에 와서는 종종 Y와 보내는 시간이 생기고 있다.
저녁을 먹자는 문자를 받고, 밥 차리는 행동을 중단하고, 가볍게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으로 돼지 국밥을 먹었는데, 땀이 났다. 무더운 여름이 아니면, 밥을 먹으며 땀을 흘리지 않는데 몸살 기운 때문이었는지,
밥을 먹고 한 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Y와 자주 가는 카페에 들렀다.
60개의 쿠폰을 찍는 것을 목표로 잡은 Y는 항상 이 카페를 방문한다.
그래봤자 전 음료 10% 할인 밖에 되지 않는 혜택인데, 도장 찍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인지 상당히 집중을 하고 있다.
대화를 하는 중에 가지고 온 드로잉 북이 떠올라 꺼내서 펼쳐 놓고, 끄적 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요일이고, 회사 생활에 지친 Y와 좀 더 시간을 보내려고 노래방을 들렸는데, 역시 10년 가까이 가질 않던 노래방이라
예약하는 노래들이 하나 같이 80년대와 90년대의 유행가들이었다.
노래방 분위기도 지방의 오래된 청소도 안 되어 있고, 먼지가 쌓여 있을 것만 같은 카페트와 약간은 끈적 거리는 마이크에 음악과
상관없는 동물의 세계 영상이 흐르는 것이 Y와 내가 노래방에서 노래는 부르는 것만큼이나 조화롭지 않는 환경이었다.
그렇지만, 그 조화롭지 못 한 상황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좀 더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Y와 숙소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다 4시간 넘게 시간을 보내고, 시계를 확인해 보니 새벽 5시가 다 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내린 비가 그치고 오랜시간 잠을 자서 잠들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했지만, 아마도 머리를 베게에 올려놓자 마자 잠들어 버렸나 보다.
답변 보내야 하는 메일에 대한 생각을 잠깐 잊고 있었는데, 일어나기 전 꿈속에서 받은 메일의 사람들이 나타나서 무언가를 함께 하는
꿈을 꾸고 미뤘던 메일을 보냈다.
점심을 먹고, 개천 산책을 하며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에 시선이 사로잡혀 벤치에 앉아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 보았다.
마침 들고 나온 드로잉북이 떠올라 보이는 데로 끄적 끄적 그렸다.
숙소로 돌아와 1주일치 분리 수거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작업실에서 들고 온 스피커의 볼륨을 올려본다.
어제부터 오늘은 빠른 시간 속에 느린 움직임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