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머물기
집에 머물기, 작업실에 머물기 머물기가 일상이 되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꽤 오랜 시간 창밖을 바라보거나, 인터넷을 통해 기사나, 뉴스를 보고, 관련된 주제들을 검색하
는 것에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것도 창이라면 창이겠
지. 사용하는 운영 프로그램 이름도 window니, 억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창이라고 부르고 싶다. )
작년 겨울 작업을 위한 계획을 하나 세웠었다. 한 달 중 1주일은 여행을 하면서 작업하기! 생각만으로도 흥분되고 신나는 계획이었다. 어서 다음 해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가 온 봄은 내 기대와 달랐다. 여행은커녕 장을 보러 나가는 거 외에는 가능하면 이동을 최소화하면서 지냈다. 그래도 지낼 만 했다. 레지던시 생활이 아니면 그렇게 자주 이동하는
편도 아니었고,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꽤 많았으니깐. 불안함은 있었지만, 이 생활에 불편함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외출 후 괜히 나의 동선을 기록해 보기도 하고, 아침, 저녁
눈 뜨고, 감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국내, 해외 확진자 추이를 보는 것과 창을 많이 보게 된 새로운 습관 외에는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자의가 아니라 상황에 의한 제한은 시간이 길
어지면서, 창문 너머 풍경의 잘살고 있는 식물들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게 되고, 인터넷으로 쏟아지는 가짜 뉴스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는 것에 피로감도 느꼈다. 특별한 이유 없
이 감정이 안정적 경계선 아래로 쭈욱 내려가는 일이잖아졌다. 온라인에서도 이 시기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우울감을 호소하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비슷한 감정들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위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글들을 많이 접할수록 더 가라앉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 긍정적인 생각과 기분 좋은 감정들을 느끼게 해 주는 것들을 따
라갔다. 창밖을 보다 혹은 온라인 속 기사, 음악, 영상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다. 평소에 아주 관심 있었던 주제도 아니다. 다만 그 순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고, 위로가 되었던 이
미지들이다. 그런 이미지들을 만나면 내가 느꼈던 즐거움을 담을 수 있게 희화화하여 표현 하였다. 너무 진지하지 않게, 너무 무겁지 않게 내 생각, 감정들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
게 두고 그려나갔다.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하지 못한다. 괜히 시도했다가 진지한 이야기로 결론이 나서 말한 것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으로 누군가에게 큰 즐거움이나 웃음을 주고 싶다는 야
망은 없다. 가만히 있어도, 무거운 생각들로 가득해지는 요즘, 가을바람 쐬러 들른, 잠깐 머무는 공간 속에서 그림을 보며 가볍게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