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이
인터뷰 형식의 도록을 만들기 위해 한 큐레이터와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나중에 지인을 통해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나와 인터뷰 했더니, 옛날 이야기만 줄기차게 하더라고 했다. 그랬던가? 기억이 나지 않으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인터뷰라는 것이 익숙한 것이 아니라서 나름 최선을 다해 한다고 했을 텐데(말하는 건 언제나 자신없는 일이다), 작품에 대한 거대한 담론이 담기지 않아 상대방에게 맥을 빠지게 했을지도 모른다.
내 그림을 이야기하려면,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내 작업의 일관된 주제는 ‘불안’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내 삶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나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조금 멀리 돌아가야 한다. 열두 살 무렵,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이라는 공간에 머물렀다. TV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때 내게 문학적 소양이 있었거나 사색의 깊이를 즐길 수 있었다면, 글을 쓰거나 철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든 것에 회의적이었고, 자신을 부단히도 미워했다.
만약 10대나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지금 이 시기에 머무르고 싶다고 확언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시간들은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개인으로서의 자신과 사회적으로서의 자신이 무던히 충돌하던 시기였고, 우울증 과 불안이라는 것을 망치질로 꾸준히 두드렸다. 그러면서도 언제가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미약한 희망을 붙잡은 채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 다녔다. 지금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라는 것도 불안이라는 것도 살고자 하는 버둥거림인지 모르겠다.
작업을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에 눈을 돌리니 많은 사람들이 불안이라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안고 가는 보편적인 특징인지도 모른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수없이 회자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나고 또 한 세대가 온다면, 이것에 대한 특징이 어느 정도 정의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작업을 통해 치유의 과정을 겪지 않느냐고. 남들에 비해 불안을 바라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그것을 작업으로 옮긴다고 해서 치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저 이제는 그 상황을 한 발짝 떨어져 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인지도. 초조함과 고통을 동반해 오는 불안이라는 것이 자신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는 것 또한 말이다.
불안은 언제든지 찾아 든다. 아니, 찾아 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언제든 일어나 의식의 한 자리를 차지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것이 의식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처음엔 저항하다가 순간 온 몸의 기운이 빠지고, 감각의 스위치가 꺼지는 기분이 된다. 카메라에 불투명한 필터가 끼워지듯 시야가 아득해진다. 그나마 시선을 유지할 힘이 있는 게 다행이다. 그런 순간이 오면 한때는 아스팔트 갈라진 틈 사이로 솟아나는 식물의 생명력을 찬양했던 한 인간이 이제 그것을 무심히 밝고 지나간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방대한 정보와 물질로 가득차 있다. 이런 것들이 소비를 조장하고, 지식 습득을 강요하며,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 미디어에서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외모를 아름답게 가꿔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충고 한다. 텔레비 전을 거의 안 보는 나조차도 식당이나, 터미널에서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는 걸 멍하니 보고 있자면 어느새 설득 당한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인터넷은 어떤가? 이젠 집안에 틀어박혀서 평생을 살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의 뉴스를 접하고, 새로운 개념의 이론과 지식 들을 습득할 수 있으며,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다. 심지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기존의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
이렇게 풍요로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왜 점점 공허해 지는 것일까?
친절하고 편리한 매체를 손 안에 쥐고서도 왜 점점 더 불편한 마음을 지니게 되는 걸까?
24시간의 하루를 보내는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은 얼마나 될까?
길 위나 지하철 또는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스마트폰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식당에서 서로 마주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며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비난하려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저렇게 쉴 틈 없이 무언가를 주입하면, 나중에라도 찾아오는 자신의 시간 속에서 풀어야 할 것들을 언제 바라 볼 수 있을까?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라는 것은 상대를 사람을 알아가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은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인데, 그것조차 차단시키는 모습이 내게는 놀라움을 자아냈다.
자살률이 높아지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점집이 호황을 맞고 있는 것은 자신의 미래가 불안정하고(우리는 미래지향적 인간일 거라는 가정 하에...), 현재에 만족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불안의 시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의 시간이 사라져 가면, 그것은 전부를 차지한다.
생각하는 능력도 습관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나처럼 시간이 많은 사람도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몰입하려면 의식적으로 그것을 응시하지 않으면 각종 매체의 유혹으로도 벗어나기 힘들고, 멍해지는 일이 많다.
내 작업이 불안과 우울이라는 것으로 출발하여 여전히 그것을 응시하는 것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10대와 20대를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시기로 남겨진 안타까움이 불안과 우울로부터 도피하고, 사고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불안을 바라보려는 의식을 놓지 않았다. 어쩔 땐 그것이 내 온몸을 장악 할 때도 있었고, 분석을 통해서 원인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가끔은 처음으로 돌아가 우울증의 시작점인 유년시절로 거슬러 가기도 했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기만 하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울까 하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간 또한 고행이었다. 이 정도면 알 것도 같다라고 느낄 때마다 새로운 형대로 나타나곤 했다. 그 무게감을 덜기 위해 일반화해보기도 했다.
여전히 그 과정 속에 있지만, 크게 변한 부분이 있다. 불안이나 우울이 해충과 같이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없애는 것도 불가능 할 뿐 더러,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불안이 다가오는 감도를 느끼는 감각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너무 단순하고,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텍스트나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걸 느끼기까지 내게는 꽤 긴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전시를 하면서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그림이 밝아졌다라는 말이다. 생각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그림에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불안이라는 주제로 작업한다고 하더라도 한 개인이 어떻게 한 가지 요소로만 이루어지겠는가?
다른 요소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자연스럽게 스미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것이 행복하다. 글 재주나 사고의 깊이가 그 리 깊지 않기에 철학적 담론을 풀어내지는 못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꾸준히 생각할 수 있다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 말이다.
전시 제목을 오래된 아이로 지은 것은 이 불안을 인지하기 시작한 시점이 유년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로 되돌아가 보니, 그때의 그 아이가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오래된 아이는 언제가는 내게서 떠날지도 평생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내 그림에 표현되는 고양이 인간의 형태가 아이로 묘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불안의 무게감에 짓눌리지는 않는다.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 졌다.
올해는 식물도감 작업을 위해 밖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식물을 관찰하면서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삶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식물들의 성장과 죽음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면서 그 모든 과정이 신비로운 것과 동시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삶과 죽음이나 때때로 느끼는 기쁨, 슬픔, 분노, 불안 죽음 등도 자연스러운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다소 늦은 깨달음이지만, 이제는 삶도 작업도 조금은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가볍지 않게 또 너무 무겁지 않게....
2013.11월 어느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