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기계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통과하는 생각과 감정들이 기록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라봄, 머무름, 되 뇌임 속에서 내 안에 오랫동안 머물러 남겨진 것들이 나의 손으로, 손가락 끝에 쥐어 진 콘테를 통해서 하얀 캔버스 위로 새겨진다. 선을 하나씩 그어 나갈 때마다 그것들은 구체적 모양새를 갖추고 그리고 힘을 갖게 된다.
그림 속에는 진실, 용기, 절망 온갖 종류의 감정들과 나의 눈으로 저장된 이미지들이 담겨있다. 내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들이 마냥 즐겁고, 달콤하고, 아름답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나의 내면은 그렇게 달콤하고 향기로움으로 가득한 감정들이 흐르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내 그림 속에서는 사라지지 않는 순수함(어린아이의 순수함과는 다른)과 작은 불씨에도 타오르는 건강한 열정을 담고 있다. 물론 모든 그림 속에서 항상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항상 발견되는 것은 스스로 에게 꾸준히 요구하는 끈기와 긴 노동이다.
아침이 되면 반복적인 일상이 시작된다. 그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도 불현듯 불안감이 찾아 올 때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그 불안감의 물살 속에서 허우적거렸고, 어느 정도 익숙해 졌을 땐 시간을 두고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제는 그 불안감이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새로운 자극을 주면서 공간을 좁혀간다. 수학 문제를 풀거나, 과학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이 그런 자극의 한 종류이다. 어쩌면 내 생애 풀리지 않을 빅뱅 이후의 생명 탄생에 대한 비밀을 생각하거나, 지구의 오랜 시간과 우주의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삶에 대한 경건한 자세로 마치 수행자(콘테 선을 수없이긋다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와 같은 마음을 갖기도 하고, 늦은 저녁 산책을 하다가 검푸른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무한히 넓은 우주와 그 속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고요한 시간을 소중하게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내 개인적인 순간들(외부의 자극이든, 내부의 자극이든)을 의식화 하여 그 순간들을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이미지로 전달하는 게 가능할까? 모두가 다른 시간대와 경험들을 가지고 있지만,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보편적인 무언 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무언가로 이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잘 그리고 싶다’ ‘내 그림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감정을 어루만져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당연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모든 것이 너무나 부족하지만, 다행히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면서 몰입 할 수 있고, 캔버스 속에서 내가 만들어가는 세계가 만들어 지는 것이 즐겁다. 나의 개인적인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긴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열정을 소모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 시간과 열정을 만족할 정도로 소모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르겠다. 속도가 더디더라도, 천천히 단단한 체력과 건강한 열정으로 나를 통과해 가는 것들을 그려 나가는 긴 호흡을 이어가고 싶다.